명절 음식은 기름을 참 많이 씁니다. 전 부치고 튀김 하고, 팬을 올려 둔 채 잠깐 자리를 비우기도 하고요.
부산소방재난본부가 최근 5년 추석 연휴 화재를 정리해 보니 음식물 조리 중 부주의가 37건(22%)으로 평상시보다 6.8%포인트 높았습니다. 불이 난 곳도 주거시설이 62건(36.9%)으로 가장 많았고요.
이때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물을 붓는 것입니다. 기름 불에 물을 부으면 꺼지는 게 아니라 확 번져요.
가스 밸브부터 잠그고, 냄비 뚜껑이나 물기를 꼭 짠 젖은 수건으로 덮는 것이 순서입니다. 소화기를 쓴다면 몸통에 'K'가 적힌 주방용이어야 하고요. 왜 그런지 하나씩 볼게요.

물을 부으면 왜 더 커지나요
대전소방본부가 추석을 앞두고 이 상황을 직접 재현했습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와 콩기름을 넣고 가열해 불을 낸 뒤, 물과 젖은 수건과 K급 소화기를 각각 써 봤어요.
물을 뿌리자 불붙은 기름이 주변으로 튀면서 불길이 크게 확대됐습니다. 물이 뜨거운 기름 속에서 순식간에 수증기로 바뀌면서 기름을 밀어 올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순서는 이렇습니다.
1. 가스 밸브를 잠급니다. 열원을 끊지 않으면 덮어 놓아도 기름이 계속 달아올라요.
2. 그 자리에서 뚜껑을 덮습니다. 팬을 들고 싱크대로 옮기려다 기름이 쏟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기를 막는 것이 목적이니 옮기지 말고 덮으세요.
3. 덮은 뚜껑을 바로 열지 않습니다. 불꽃이 안 보여도 기름은 아직 뜨겁습니다. 공기가 닿으면 다시 붙을 수 있어요.
젖은 수건을 쓴다면 물기를 꼭 짜야 합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면 결국 물을 붓는 것과 같으니까요. 소방 관계자도 K급 소화기가 없을 때는 물기를 짜낸 젖은 수건으로 덮고, 여의치 않으면 배추나 상추 같은 큰 잎채소로 덮으라고 권합니다.
불길이 이미 후드나 벽을 타고 올라갔다면 붙잡고 있지 말고, 대피하면서 119에 신고하세요.
소화기 몸통에 'K'가 있는지 보세요
소화기는 어떤 불에 쓰는 것인지에 따라 표시가 다릅니다. 소화기의 형식승인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이 소화기 몸통에 적도록 정해 둔 표시예요.
| 표시 | 어떤 불에 쓰나 |
| A(일반화재용) | 나무·종이·섬유처럼 타고 나면 재가 남는 것 |
| B(유류화재용) | 기름·페인트 같은 인화성 액체 |
| C(전기화재용) | 전기가 흐르는 곳 |
| K(주방화재용) | 주방의 식용유 |
집에 두는 분말소화기에는 보통 A·B·C만 적혀 있습니다. 기름에 쓰는 B가 있으니 되지 않을까 싶은데, 식용유는 굳이 K로 따로 떼어 놓았어요.
이유는 소방청 설명에 있습니다. 식용유는 발화온도가 280~400℃라서, 한번 불이 붙으면 표면의 화염을 없애도 기름 온도가 이미 발화점 이상이라 다시 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그래서 K급 소화기의 합격 시험은 다른 소화기와 다릅니다. 콩기름을 계속 가열해 저절로 불이 붙게 만든 뒤 2분 동안 그대로 태우고 나서 소화기를 뿌리고, 다음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해야 합격이에요.
• 완전히 꺼질 것
• 뿌리기를 끝낸 뒤 20분 동안 다시 붙지 않을 것
• 기름 온도가 발화온도보다 35℃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다시 붙지 않을 것
불꽃을 껐는지가 아니라 기름이 식을 때까지 다시 안 붙는지를 보는 셈이죠. 여기에 시험이 하나 더 있는데, 소화기를 뿌렸을 때 튀어 나간 기름 방울이 5mm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세게 뿌려서 기름을 사방에 흩뿌리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A·B·C만 적힌 소화기는 이 시험을 거친 제품이 아닙니다. 급하면 당연히 써야 하지만, 불꽃이 잠깐 잡혀도 자리를 뜨지 말고 119에 신고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소방청도 기름을 많이 쓰는 주방에는 K급 소화기를 비치하라고 당부하고 있고요.
그런데 우리 집은 소화기를 꼭 둬야 할까요
여기서 집집마다 갈립니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아파트·기숙사 제외)의 소유자에게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어요.
아파트가 빠져 있는 게 좀 의외죠. 건축법에서 아파트는 주택으로 쓰는 층이 5개 층 이상인 건물이고, 4개 층 이하는 연립주택·다세대주택입니다. 그러니까 흔히 빌라라고 부르는 집은 대부분 의무 대상이에요.
| 우리 집 | 법이 정해 둔 것 |
| 단독·다중·다가구주택 | 소유자가 소화기 + 단독경보형 감지기 설치 |
| 연립·다세대주택(빌라) | 소유자가 소화기 + 단독경보형 감지기 설치 |
| 아파트·기숙사 | 주택용 소방시설 의무에서 제외 (대신 아래 자동소화장치) |
몇 개를 어디에 두는지는 시·도 조례로 정합니다. 서울시 조례를 보면 소화기는 세대별·층별로 능력단위 2단위 이상 1개 이상, 집 안 어디에서든 소화기까지 걸어서 20m 안이어야 하고, 감지기는 구획된 실마다 1개 이상입니다. 침실·거실·주방처럼 벽이나 칸막이로 나뉜 공간을 하나씩 세면 돼요.
다만 안 했다고 과태료를 물리는 조항은 없습니다. 300만원 이하 과태료는 건물(특정소방대상물) 쪽 규정이고, 주택용 소방시설은 벌칙 없이 설치 의무만 있어요. '의무인데 단속은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아파트는 주방에 자동소화장치가 붙습니다
아파트가 그냥 빠지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시행령 별표 4는 후드와 덕트가 있는 주방을 두고 아파트등과 오피스텔의 모든 층에 주거용 주방자동소화장치를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가스레인지 위 후드 안쪽이나 그 옆을 보면 감지부와 작은 약제 용기가 붙어 있어요. 열이나 불꽃을 감지하면 가스를 잠그고 소화약제를 뿌리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소방시설 기준은 보통 새로 짓거나 고칠 때 적용됩니다. 지금 규정이 그렇다고 오래된 아파트에 반드시 달려 있는 건 아니에요. 이번 기회에 후드 주변을 한 번 올려다보세요. 없다면 소화기 하나를 주방 가까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이미 있다면, 30초 확인
소화기가 있어도 못 쓰는 상태면 소용이 없죠. 소방청이 안내하는 확인 지점은 두 가지입니다.
압력계 바늘이 초록색 범위에 있는지.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넘어가 있으면 제대로 뿌려지지 않습니다.
제조연월에서 10년이 지났는지. 분말소화기의 내용연수가 10년입니다. 제조연월과 내용연한은 소화기 용기에 지워지지 않게 표시하도록 돼 있으니 몸통을 돌려 가며 찾아보세요. 10년이 지나면 바꾸거나 성능확인을 받아야 하는 의무는 건물 관계인에게 적용되지만, 집에 있는 소화기도 같은 기준으로 보시면 됩니다.
감지기는 점검 버튼을 눌러 소리가 나는지 확인합니다. 배터리 수명은 약 10년이고, 요리 연기 때문에 잘못 울릴 때는 리셋 버튼을 누르면 돼요.
둘 다 꺼내기 쉬운 자리에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붙박이장 제일 안쪽에 넣어 두면 정작 필요할 때 못 꺼냅니다 ^^
고향집에 가시면 같이 봐 주세요
소방청이 9월 10일부터 27일까지 '고향집에 주택용소방시설 설치하기'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방마다 감지기 하나, 세대별·층별 소화기 하나'가 알림말이에요.
왜 주택이냐면, 최근 10년간 주택 화재는 전체 화재의 연평균 27.3%인데 화재 사망자의 59.8%가 주택 화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잠든 사이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큽니다.
같은 기간에 오래된 아파트의 감지기 무상 지원도 함께 안내하고 있어요. 네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세대가 대상입니다.
• 2004년 12월 31일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
• 세대 안에 스프링클러가 없고
• 연기감지기도 설치돼 있지 않으며
• 만 13세 미만 아동, 만 6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이 사는 세대
세대당 최대 3대까지 무상으로 주고, 관할 소방서에 방문하거나 전화·누리집으로 신청합니다. 직접 달기 어려우면 방문 설치도 해 줘요.
이건 전액 무상입니다. 소방청도 보도자료에 따로 적어 뒀는데, 집에 찾아와 감지기를 사라고 권하거나 돈을 요구하면 소방관 사칭이니 관할 소방서나 119에 신고하세요.
올해 전 부치기 전에
복잡해 보이지만 준비는 간단합니다. 팬 옆에 냄비 뚜껑 하나를 미리 꺼내 두고 시작하세요. 불이 붙었을 때 뚜껑을 찾으러 다니는 그 몇 초가 제일 위험하거든요.
그리고 기름을 올려 둔 채로는 자리를 비우지 않기. 이게 사실 제일 확실한 방법이에요.
참, 대전소방본부는 같은 날 보조배터리 화재도 재현했습니다. 충격을 받았거나 부푼 배터리는 바로 쓰지 말라는 내용인데, 버리는 방법은 보조배터리 버리는 법에 정리해 뒀어요.
불이 커졌을 때는 끄는 것보다 나가는 게 먼저입니다. 다만 아파트에서는 무조건 나가는 것이 답이 아닌 경우가 있는데, 그건 아파트 불나면 무조건 대피?에 따로 적어 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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